쟁점한국사 강의 원문 압축본
[seminar] 17 min read
KAIST HSS399.02 쟁점한국사 수업 필기 압축 (2018학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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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구분 = 발전. Q1 현대는 있는가?
- 가. 서양의 시대 구분】 사회 (중앙집권 → 분권 → 강력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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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영주와 농노 , 봉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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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 근대】 사회는 관료제와 중앙집권적 행정제도. 시민은 개인의식, 자본주의 및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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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세】 아시아를 위한 (자본주의는 있으나 근대는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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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중세】 돈을 번 지주가 땅을 더 사지, 공장을 짓진 않는다 (근대로 못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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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동양의 시대 구분】 국가체제 정비 (왕조의 완성도)
- 다. 역사는 계속 발전하는가? 장기 정체의 역사 존재.
- 라. 마르크스주의】 사회는 계속 발전하며 자본주의의 뒤는 공산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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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유물론】 물질 생산이 역사를 바꾼다는 사관. 인물/사건 대신 생산수단/생산량 중심의 실증사관 (vs. 방법론적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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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관
- 가. 식민사관 Q3 왜 그렇게 오랜 과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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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에선 지배 합리화 기제로 서양우월주의 작동. 조선인은 맨날 싸워대므로 미개해.
- 가) 따지고 보면 식민사관도 근대화론의 변형이 아니냐? (마르크스의 인도 관찰 후 ‘아시아적 생산양식론’. 키워드는 정체) 모든 사람이 전제자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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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선 동조론
- 가) 40년대】 전쟁에 민간인까지 모두 참여할 명분 (같은 조상 같은 민족).
- 나) 일본 태양신과 엮인 단군, 전까진 소중화, 주나라인 기자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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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선사관】 만주와 역사가 하나. 자주적 역사가 없으므로 저항할 이유없다
- 가) 저항의식과 사상적 기반 (외세에 종속 않고 침략 불구 자주적 역사) 없애기
- 나) 20년대】 문화통치 친일파 육성. 일본은 한국사 연구. ex) 광해군의 외교 전술에 주목 (광해군 실용노선 실패 명분파 득세 자연스레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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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율성론과 단군신화】 종속적 역사 강조. 중국에 종속. 복종. 조선은 스스로 단군신화를 부정했다. 일제도 기자 한사군에로 중국의 식민지배 주장. Q4 대종교 나철 등 왜 대종교 신봉자가 독립운동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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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론】 자신의 발전이 없었다. 백남운 사적유물론 고대사회부터 노예제 정체? 반박 씨족 공산제, 노예제, 농노제, 봉건제의 일련 과정 발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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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율성론과 정체성론】 위 중국 (기자) 아래 일본 통치. 한민족 이때 발전 뒤로 정체. 이때 그나마 고대로 발전.
- 가) 광개토대왕릉비의 논란 : 1줄 백제와 신라 과거에 (고구려의) 속국 백성으로 조공. (유래 조공) 2줄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깨뜨렸다 (파) 무엇을, 백잔 ㅇㅇ (가야로 추정) 신라를, 그리고 신민으로 삼았다 (위) →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왕후의 임나일본부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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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민족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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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이라는 데 역사의 주안을 둔다. 우수성뿐만 아니라, 식민 되지 않은 자율성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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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론적 사관 (vs. 실증사관)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 “왜 고조선이 요동에 있냐?” “너 식민사관이냐?” Q2 민족사관이 양날의 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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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민족사관 치우침 반성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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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 가. 중국 백제 상륙작전】 부여로 올라가 평제 탑으로 (정림사지 삼 층) 15만 (중국 전력) 군사. 힘들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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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뻘이었고, 배 만들기 힘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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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5 당은 왜 이걸 감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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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중국은 나당 동맹부터 체결 (648년, 당 태종 죽기 1년 전에. 유언으로 고구려치지마? ㄴ).
- 다. 의자왕 실수】 고구려와 손 안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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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당나라가 고구려를 점령하게 놔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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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굴욕적 동맹】 신라 왕을 계림도독. 만주국 황제. 형식적으로 몇 년 식민지 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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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6 신라가 왜 삼국통일을 염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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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국호】 대한민국의 민족 정체성 한. 대동강 이남 삼한이나 위만조선? 의 한왕 남쪽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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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조선의 조선은 낮게 잡아도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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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때 국호 분쟁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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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영토가 중요한 게 아니 (고대는 영토 중요 않) , 고구려 역사 우리 역사 희미 (중국사에 고구려 유민을 이주시켰다고, 고전적인 정체성 말살) 발해는? 애초에 고구려 땅에 세웠으니 고구려 후예 자처, 기와 문양 같은 건 당연히 닮. 장기적 역사에서 외세의 힘을 빌린 것 후유증 식민지 뿐 아니라, 고구려를 뺏겨 역사 주장 없 더 큰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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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
- 가. 왜란후 새로운 사상 필요. 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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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득공】 역사에 관심. ‘남북국시대’ 제시→ 자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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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고구려 영토를 차지한 침략자→ 고구려 긍정적, 발해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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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고려에 발해 ‘적국’ (왕건 훈요 10조 ‘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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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 역사 조사 이유】 서경 천도 배경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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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Q7 왜 일제시기에 와서야 발해를 적극적으로 한국사에 포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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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군 인조
- 가. 왜란 인조 도피 혼란 후 분조(권력분리)로 해결유도
- 나. 금(청 됨) 압박. 명 재조지은. 조선 대립.
- 다. 북인】 광해군 중립외교 현실실익.
- 라. 서인】 인조반정 반인조 난 제압 반금친명 호란 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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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8 과연 인조는 반금친명 외교를 진행하면 청나라가 쳐들어올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Q9 그럼 알면서도 이렇게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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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훈구-사림 갈등】 연산군이 사림 조짐. 선조 때 중앙 획득.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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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당 사이의 갈등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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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
- 가. 자주적 근대화 실패. 일본 우익 자랑거리.
- 나. 근대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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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적 사고】 시간 절약적. 사회 진보로서 ‘개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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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5단계 발전론】 원시 공동체 → 고대 노예제 → 중세 농노제 → 근대 자본주의 →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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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대혁명】 사회 기득권 종교계 자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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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세동점】 서구가 동양 물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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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진화론】 사회의 단선적 진보 기초.
- 가) 한국 덜 발전했으 더 가야. 춘원 이광수, ‘사회진화론’ 에 입각해 쓴 “민족개조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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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주의 이론의 저항
- 가)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도약한 국가는.
- 나) 종속이론】 산업으로 묶여 있는 후진국. 선진국이 죽일 수 있는 후진국.
- 다) 세계체제론】 중심국가가 따로 교류 = 세계질서.
- 라) 비인간적 가치관】 양적 성장에 따름. 정이 심각해 이해의 요구, 관행 정착 (퇴근 정시 고까워 정서)
- 마) 국익에 따른】 근대 = 국가 단위의 사회, 국익 절대선 긍정 “우리를 위해 고래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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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내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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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양법】 모내기 생산량 상품 작물 상업. 경영형 부농 층 형성, 광작 = 농장에서의 공장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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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 금납화】 시세가 바뀌는 각종 상품 ㄴㄴ 쌀. 합리적이고 발전된 제도가 됨, 실체가 없는 돈 (금납화). 갈수록 근대사회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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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난전권의 폐지】 난전 (시전 말고 행상) 설립 가능, 상인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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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영수공업】 커지면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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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전】 현대사회는 계층 (수저) 은 있지만, 계급은 없다 상속되지 않음. 노력에 따라 (강원랜드는 계급사회로 나라가 돌아가려는, 막아야 하는 일) 양반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몰락 양반을 고용해 배우는 점을 희화화한 소설. 근대화의 모습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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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학파】 박제가. 상공업을 중시하는 사조가 들어오는 게 자본주의 산물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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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근대화】 입헌 (왕의 권한을 줄이고 신하의 공론 후 왕이 추임하는 체제로) → 탕평 (여러 정당이 건의) 상소 (사간원 등), 이들은 현대에는 국회가 하는 견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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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내발론의 이유】 정체성론 “한국 진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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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 자체는 고대부터 있었고, 상인이 땅을 사서 지주가 됨. 근대로의 발전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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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사건의 연속성이 없음. 개화파라든가 개화 직전에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 등의 실학의 연결성이 되게 어설픔. 셔먼호 불태운 실학자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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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인론과 외인론 (갈등인가 방해인가)
- 가. 내인론 :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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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도정치 근간 서원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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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권 강화 경복궁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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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10 흥선군은 왜 세도정치에 대항할 세력을 키우고 백성 마음을 안정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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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건적 but 근대화로 가는 길을 막는 결정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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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11 흥선군은 왜? 쇄국했는가
- 가) 셔먼호 엔진 해부 지시
- 나) 내정 실패
- 다) 후임 고종 프레임. 문 열기. 개화파. 왕권 강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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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개항. 미숙한 일본
- 가) 강화도 조약 반발. 청일전쟁 발발시킴. 갑신정변 군 즉시투입 불가. 청군 때문에
- (1) 김옥균 친일파의 원형.
- 나) 왕비를 죽임. 러 대사관 망명. 청나라 땅 못 가지게 러시아. 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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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의 마지막 개혁이 광무개혁.
- 가) 각종 이권 (금광권 철도권) 팖.
- 나) 서툴 늦었. 여론 모르고 국민소통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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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건개화 갑오개혁은 일본이 켕길 게 없, 일본이 시키는 대로. 중국이 이미 동도서기니 중체서용이니 하고 있어서 쉽게 들어옴. 동양도덕윤리질서 서양기술. 중국유학 서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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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 수구세력 척왜양이 위정척사파】 반외세 항일에 가장 강력. 척왜양이= 동학군 구호. 의병전 시작한건 양반 유인석. 독립군 원류.
- 가) 자주적 근대화는 주권유지에 수구파 공헌.
- 나) 양반과 평민 의병 대립. 봉건적인 체제의 한계.
- 다) 대원군 몰아내 ㄴㄴ.
- 라) 하지만 1차 봉기는 사또 조병갑. 봉건제에 저항 민주주의를 지향 근대적
- 마) 2차 봉기는 청일전쟁 외세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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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결론→ 두 세력 모두 노력 특히 반외세에 대해 노력은 했다. 한계로 근대국가로 가는 기본적인 생각이 아주 달랐다.
- 다. 외인론은 다 아는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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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 가. 31운동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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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뺏어서 일본인에게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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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령으로 일본 기업 수립 활동에 유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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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은 사회 전체 군인 지배. 31운동 뒤 상시 계엄; 잦아들지 않음. 조선인으로서 느끼는 차별 (좋은 대학도 못가고…). 학생 지식인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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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적 지식인을 만들지 못한 일본의 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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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 아니어도, 전통 바꾸는 강압적 근대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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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는 31운동을 천도교 폭동으로. 1년 동안 크게 퍼짐. 예상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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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 문화통치로 친일파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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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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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지원. Q13 왜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빨갱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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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척식㈜ 땅놀이. 소작쟁의 (현대 = 파업쟁의) 쌀 수탈 일본 쌀값 안정, 노동자 임금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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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불황 장기화】 관동대지진 농업금융공황 대공황.
- 가) 만주진출 시장개척 → 만주사변, 화북시장이 탐나서 중일전쟁.
- 나) 조선은 농업에서 중화학 공업.
- 다) 공황 곡기 줄임 쌀값 하락, 일본 농민의 반발, 조선 쌀 수입 금지 요구, 식민지 공업화 필요성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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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업화 덕분에 대공황 탈출, 조선 기업도 만주로 진출 (경성방직 → 만주 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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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30년대】 경제 좋다. 농정 (농업정책) → 농공업 병진 (고르게 발전), 조선소작령 (지주 탄압), 자작농 창설 운동, 농촌이 일 안 하는 게 문제다 (이데올로기) 농촌진흥 운동 (빨래 힘든 흰옷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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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일전쟁 여유가 없어져 동원체제 구축.
- 가) 자원입대 ( 홍보, 이광수 등의 문인을 통한 찬양 )
- 나) 자원을 가장한 강제 ( 제국대학 엘리트들이 모범, 민중들은 경외 )
- 다) 징병 ( 조선인에게 총을 쥐여주는 위험 존재, 조선인 관리 장교 필요, 조선인 일본인 통역 장교 필요, 그러므로 마지막 수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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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또 다른 실책 “관리할 때는 분리해야!” 하는데, 한국말 사용금지 창씨개명 등으로 국민 대통합 분노 이슈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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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으로의 투쟁. 좌우합작이 안 됨.
- 가. 합심해 정부를 세운 적이 없다.
- 나. 조선에서 사회주의(반 영일)를 독립운동에 ‘이용’ 하자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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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리 전투 후 일본 보복 만주 한인. 독립군은 소련지원 듣고 북상; 소련 밋밋한 도움. 독립군 내분 자유시 참변 (공산끼리 총질) 무장세력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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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지원. 무장세력 팔로군의 일원으로 가입, 김일성 부대는 소련 부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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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민테른의 우익 결별 지시. 독립운동가가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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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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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대륙으로. 화북 독립운동가 힘 필요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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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공합작 본받기. 필요성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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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동맹 결성 유일 당으로 민족혁명당. 임시정부 세력 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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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봉이 좌파 주도권. 김구와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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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 비참여 세력 규합해 임시정부 내 한국국민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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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김원봉 - 김구는 중일전쟁 후 40년대에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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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 김원봉 수그려 총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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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김일성, 공산당 무장세력 비포함 (허가이, 무정 등). 중국 공산당 팔로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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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과 교섭, 광복군, 청년 OSS 훈련 중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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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는 다 인정받는데 한국은 미인정. 편의에 따라 일본군 무장해제 빌미로 38선. 참 안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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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절 후보
- 가. 개천절 한민족의 시작
- 나. 31운동일 이승만 정부에서도 재건 선포. 시작은 31운동으로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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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를 선포한 날 아니다. 회사를 법인화한 게 아니라 그냥 아이디어만 낸 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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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4월 11일 현재 가장 큰 지지. 상해임시정부 내각에는 내로라하는 인물, 좌우 인물 통합. 연해주 공산주의자들이 31운동을 계기로 상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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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정부가 아니라 해외에 있고 망명 임시 국민영토 없는 아무것도 없는 정부이므로 상징성에서 임시정부를 이어받고 계승하는 건 알겠는데 정부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논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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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가 여러 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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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4월 23일 한성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 국내유일
- 마. 9월 11일 아주 잠깐 모든 임시정부가 통합
- 바. 45년 8월 15일 해방일. 국가를 선포한 날 아니다.
- 사. 48년 8월 15일 2번째로 강력지지. 대한민국 정부 제1공화국 제헌헌법으로 정부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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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남한은 UN에 정부 수립을 판단 맡길 (김구든 이승만이든 대표자를 뽑아주라) 것을 요구, 북한 거절. 남한만 총선거 국회의원. 국회의원이 헌법을 만듦. 국회의원끼리 투표 대통령 미국식 간선제. 임기는 2년. 2대 총선거 직후 625. 총선거 전, 김일성과 담판을 짓겠다고 김구. 그러나 버스는 떠났고, 그때 남한 내 공산주의자가 반란을 일으켜 민간인이 죽은 게 43항쟁. 총선거는 5월에 이루어짐. 한편 그걸 진압하던 부대가 반란 (부대 내 좌익 군인), 군인 중 한 명이 박정희 (남로당 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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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를 따르는 사람들은 1대 총선거에는 참여 안 함. 2대 때는 김구가 암살당한 후이므로 참여를 함. 따라서 2대 국회의원은 반이승만적인 사람이 많음. 이때 재선을 못 할 것으로 생각한 이승만은 사사오입 발췌개헌 등을 함. 심지어 임기 말인 전시에 (52년에) 있던 일. 결국, 대통령 직선제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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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지금의 문제는 첫째, 결국 북한의 역사도 같이 봐줄 것이냐 남한 단독의 역사를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의 영토는 대한민국 것으로 명시가 되어 있다. 둘째, 친일 세력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로 안중근 의사는 자신을 ‘포로로 대우해달라’ 고 했는데, 일본은 코웃음 쳤다. 그런 개념으로, 독립군 등의 운동에 대한 평가와 위상이 굉장히 위축될 수 있다. 그래서 대한광복회 같은 경우, 꽤 보수적인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48년 설을 굉장히 비난하고 19년 4월 11일설을 밀고 있다. 또한, 친일파는 비난의 첨예함에서 조금 둔화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진다.
- 자. 48년 건국설은, 이와 같은 많은 역사와 가치관을 버려야 하고, 19년은 공산 진영 포용과 다양한 …을 모두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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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정과 미국 원조. 미국이란?
- 가. 좌우 임시정부의 한계. 찬탁/ 반탁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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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소공동위원회를 김구가 친탁통치로 받아들였는데, 동아일보에서 오보 (미국은 독립 원, 소련 친탁 원) , frame 고착 (공산 친탁 매국, 자본주의 반탁 애국)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에 김구가 너무 발끈. 친일파반탁에 붙어 부활. 친일청산 frame 안 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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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반미라는 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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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반미】 야욕으로 분단주범. 원조로 이익추구. 일본과 밀월. 동북아 중심국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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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반미】 518 당시 계엄군 파견은 미군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 해명ㄴ. 한미상호방위조약 518 당시엔 평시, 전시 모두 작전권 미국. 작전권 = 위수지 밖으로 군대를 옮기는 것. 없음 쿠,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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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미의 표면화. 미 문화원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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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반미가 지금은 하나의 역사관, 가치관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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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한국은 미국 짝사랑. 일본 다음으로 수교. 김옥균이 처음으로 도움 요청. 미국은 중국 속국으로 관심 없다가 아시아 기지 목적으로 관심. 친미정권 수립 중요. 지금 미군은 중국 견제 때문에 남은 것 사실.
- 라. 일본이 일본군 개편을 위해 우리나라 패면 미국은 묵인 후 심각하면 화해시킬 것. 사실 일본편. Q15 일본 야당이 집권하면 우경화 정책이 바뀔까?
- 마. 미군정】은 현상유지를 좋아해. 신탁통치 곤철과 친미정권 수립이 1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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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잔재 청산, 좌우합작 통일국 수립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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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런 말은 틀린 말이다. 미군은 우익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친일파를 의도적으로 육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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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전시체제의 해제】 사상범예방구금법은 불순분자의 발언권 자체를 뺏어버리는 악법. 치안유지법은 빨갱이 독립투사 죽이기. 국가보안법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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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국가 수립 노선 지지】 좌파는 김일성을 제외한 상황에서 중도파 중심으로 정권을 세워보자 함. 이는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노선이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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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생각에 우익은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좌익은 굉장히 선명한 항일. 또한, 우리를 지배한 일본이 자본주의 국가라 별로 좋아하지 않음. 경제 문제는 국민이 참지 않는다 (이승만 정권이 되어야 토지개혁. 큰 공. 지주층이 경제 주도층에서 밀려나 공업 국가로 간 것도 공. 부의 재분배. 한국전쟁이 겹치면서 지주의 몰락. 그들은 국채를 받았으므로 + 전쟁 인플레로 돈을 가진 자체가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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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민간인 재단】은 전쟁보상에 포함이 되지 않음. 한국에 있는 일본 민간인 재산은 한국 민간으로 불하됨. (북한은 다 몰수하니까. 체제 경쟁에서) 이는 일본에 카드 (역청구권). 한일국교 정상화에서 어느 정도 정리 (우리로서 뼈아픈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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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쌀 원조 → 물고기 잡는 법으로 경제재건원조 (기계) → 전쟁으로 긴급원조 → 전후 경제부흥을 위한 재건 원조. 잉여농산물 원조가 별도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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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 원조를 줄이려고 (빌려 가라는 제도), 박정희 정권은 일본 접근. 원조를 받은 데 대한 역사적 평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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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농업타격】 오늘날로는 국산 밀. 당시 한국은 면화 재배를 장려했는데 타격.
- 가) 삼백산업】 제분 제당 제면 중시.
- 나) 불균등발전】 원자재가 막대한 양이 (시장보다 훨씬 싸게) 들어오므로 되파는 산업만이
- 다) 잉여농산물은 별도로 들어왔기 때문에 받은 사람들이 성장. 지금도 해안가에 제분 공장이 크게 있다. 일제강점기는 쌀 껍데기를 벗기는 정미업이 발전했고 (항구에 대규모 정미 공장)이 공장들이 해방 후에는 밀가루 공장으로 바뀜.
- 라) 매년 정부가 필요한 예산안을 미국에 제출함 (미국 세금이므로 미국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흥정 보는 게 한미 합동경제(위원회). 수리시설 같은 게 필요하면 일차적으로 미국 기업에 발주. 돈을 미국 정부가 내는 시스템. 물품이 올 때까지 우리가 하는 건 행정적 처리뿐. 들어온 후에는 물품을 수리시설 제작회사에 발주함. 그러면 회사는 물품을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제시한 가격으로 구매. 여기서 재화 발생. 이를 대충자금 (counterpart money)라고 함. 기업에서도 이게 유리하다. 기업은 시장조사를 할 게 아니라 정부에 사과 상자 하나씩 들고 가야 함. (정경유착의 발생) 대충자금은 일단 국방비에 많이 씀. 전쟁 전에는 상비군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엄청 커짐 (미국으로서도 안보로 친미정권 유지가 가장 중요하니까). 일부가 경제사업에 쓰이고 등등. 무기는 역시 미국에서 사야 하고…. (수직이착륙기가 산악지형엔 좋은데 미국에서 사야 하니까 경부고속도로에 유사시 활주로를 닦아놓고 등등, 눈물겨움)
- 마) 미국 균형재정; 한국은 경제발전 적자재정. 대충자금을 한국 마음대로 쓸 수 없다. 포항제철. 왜 가난한 나라가 천문학적 액수로 제철소를 만드는가? 돈 미국이 아닌 일본 청구권 자금. 일본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제1 용광로에는 일본 엔지니어의 이름이 붙어있다 (신일본제철).
- 바) 원조는 역시 한국이 미국의 광고판이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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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한미상호방위조약】 미군이 전쟁 후에도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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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터 미지상군 상주. 바로 개입. 미국의 전쟁을 보면 폭격 후에도 지상군 파견은 머뭇거리는데, 한국은 여전히 들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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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은 이걸 맺기 위해 북진통일론 주장하고 강경. 철조망 끊고 포로 도중 석방. 등등…. 미국이 열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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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가지 의미
- 가) 구조. 한국전쟁이 그나마 한국에 주는 선물, 서방 국가의 제한 없는 원조
- 나) 상황. 전쟁 중인데도 미지상군이 주둔. 중공군은 북한에서 철수하는데.
- 다) 현재까지 달라진 건 -평시 작전권 반환 -유엔군의 역할 줄어듦
- (1) 현재도 유엔군이 있고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겸임하지만,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된 후에 미군의 역할 늘임. 조금 부담스럽고 당시 카터가 철수를 공약했지만, 판문점 도끼 사태 덕분에 찬성함
- (2) 주한미군 (현재는 제2사단) 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 유엔군사령부는 사실 별 의미가 없어진다.
- (3) 그런데 어떻게 한국전쟁 후 일주일 만에 유엔군이 파병된 건가. 소련이 비토를 행사하지 않은 이유는 밝혀진 바는 없지만, 자신들의 결백함을 주장하기 위함이라는 게 정설. 지휘체제는 통일되어야 하기에 한국군은 유엔군에 들어가고 작전권도 줌. 하지만 ‘53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시 새로 논의해야 했는데, 변함없이 작전권을 주는 거로 체결. 이 부분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바친 건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로 사실 미국도 부담스러워졌고 (광주 항쟁에서의 반미주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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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직접통치는 3년으로 끝났고, 경제적 원조 군사적 방위조약 원조는 70년대에 끝났지만, 현재도 경제와 관련된 관습 (정경유착 산업간불균등발전 등)을 남김. 하지만 강력한 공 (고도성장의 토대 결정적 역할)도. 원조와 한미~조약은 현재까지 한미관계의 축. 원조는 현재 FTA로 대체되어 있지만, 여전히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한국에서 대단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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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
- 가. 원인 제공자가 일본이므로 적극적으로 정리에 나서야 할 것도 일본. 독일은 지금도 사죄하고 있고. 그럼 Q16 일본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 나. 일본의 근대를 중심을 이루는 게 천황 (메이지) 그리고 만들어진 게 육군 해군. 일본에서 욱일기는 해군 깃발뿐이라고 얘기하지만, 근대화와 군국주의는 뗄 수 없음. 근본적으로 천황은 일본 근대화&군국주의 자부심. 즉 천황과 이 두 가치는 분리가 안 된다. 군국주의 자체만을 부정할 수가 없음. 야당조차 우익과 분리 못한다. 독립운동가 묘소에 헌화한다든가 불가능.
- 다. 협상의 시작은 선박반환 문제. 미군정법령에 따라 한국에 소유권이 귀속되게 된 선박들을 일본이 그대로 가지고 가서 돌려주지 아니하여 여러 차례 강력하게 반환을 요청하고 협상도 벌였지만, 일본 측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어 와서 반환받지 못하여 미결상태로 방치됐으며, 평화선 문제도 있었다. 한일 양 교섭 당국은 이러한 숙제를 일괄타결하기 위하여 평화선을 새로운 내용의 어업협정으로 대체하고, 선박반환문제는 이미 고철이 된 상태이므로 민간협정차관 3,000만 불을 배정하여 그 자금으로 선박을 확보하도록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연유도 있고 하여 대일청구권자금은 해운을 위하여 비교적 후하게 배정되게 되었다. From <http://www.monthlymaritime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1→ 청구권을 배상권이 아니라 그냥 경제협력으로. 민간상업차관 한국 투자에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푸시. 한일협정에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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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 제2조 (a) 독도가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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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조 (b) 미군정이 들어와 일본의 민간인 재단을 몰수하고 한국에 불하했음을 인정한다.
- 가) 미국도 사실 책임이 있고 좀 께름칙하니까.
- 나) 그래서 한일 간 싸우면 미국은 ‘이 조약으로 책임 끝났다’라고 할 수 있는 것. 독도에 대해 지금 미국에 물어보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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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한국, 개발 위해 역사 상품처럼 팔았다. 외교는 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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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협정한 걸 파기하겠다는 것도 사실 20세기 후반으로 와서 전례가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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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기업 기술 이전에 고생하며 큰 도움, 현재 모른 체하고 인정해주지도 않는 것은 어쩌면 남북관계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배은망덕’ 논리의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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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도움은 대일 의존적 경제구조와 만성적 대일무역적자로 남아. 그리고 일본 우경화에 새롭게 이용되는 논리는 굉장히 뼈아픔. 정치적으로 이 상황이 이용되는 것. ‘배은망덕’ 의 논리와 영원한 사죄의 논리. 이 논리를 우리가 아니라 일본 국민에게 발신한다. 그들의 반한감정이 충분히 이용될 수 있는 논리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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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 가. 사범은 교육 차별 조선인 엘리트의 대학. 더 야망이 컸던지 일본군. 혈서 논란. 박정희의 인생사. (박상희 여순반란 숙청 불명예제대…. 625…. 별2개…. 지금의 위상보단 높은 지위)
- 나. ‘이제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오면 안 된다’
- 다. 정상적인 민주절차로 정권을 잡았다고 만들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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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이 맨날 싸우고 사회는 온통 데모고…. 혼란하고 경제도 망하고 내가 구국의 뜻있는 장교들 모아 한다’ 육사 8기들.
- 가) 가장 동기 많고 (한국전 소대장, 신임장교들) 많이 희생되었으므로 자부심, 친일에서도 혐의가 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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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정부가 개혁, 깡패 조지고, 경제적으로는 부정축재처리법이 생기고 경제민주화 (뇌물로 경쟁하는 게 아니고 시장에서 공정하게) 하지만 군의 요구를 무시함. 그래서 나는 안정되면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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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프레임은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 굳건 덕분에. 하지만 김일성에 비교하면 열등감이 있음. 그래서 김일성 가짜설도 나옴. (항일운동 김일성과는 다른 사람이다 ) 하여간 문제는 다른 데 있음. 본인이 좌익 군인이라는 것
- 가) 혁명공약에 혐의를 벗기 위한 반공 국시. 반공 이데올로기 프레임.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보도연맹 학살사건. 박정희의 문제는 미국의 의심 (좌익인가? 친미정권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래서 대통령 이전 군인 신분으로 미국에 날아가 증명하려고 함. 먼저 꺼낸 것이 베트남 파병 가능하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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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못살고 민주당이 지지부진. 장준하 박정희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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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경제개발의 쟁점. 박정희 아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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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는 황금세대. 많은 숙련 기능공 엔지니어 필요해 폴리텍대와 카이스트. 그 밑에 양질의 노동력으로 공고. 이게 박정희와 기술관료들의 공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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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때부터 원조물자로 토대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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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박정희가 군대 심보로 부정축재 처리해 장면 정부 당시 경제 5개년 계획 담당인 장준하가 박정희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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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장면 정부 당시 5개년 계획도 있. 이승만도 ‘58에 5개년 계획. 독창적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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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 근면하게 노력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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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호황 속에서 공산 진영에 대한 선전마을. 미국이 조악한 물품을 많이 사준 것. 지금은…. 그런 한국처럼 된 국가가 없다. 한국에서도 저개발 국가에 교육도 해주고 많이 투자해 주지만 아무도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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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사실 현재로는 독재자냐 지도자냐 하는 건 병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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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가 국정교과서를 통해 치적을 강화하려는 논리로 주장했으며 매우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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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에서는 박정희 덕분이 아니라고 하지만
- 가) 근면 게으르다 그런 건 제국주의적 논리. (필리핀은 게을러서?)
- 나) 이승만 고평가
- 다) 지금에 와서는 박정희와 기술관료들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100%는 아니라고 … 물론 설득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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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경제성장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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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대체】 일본에서 기계 수입 이병철. 설탕을 만들자! 물론 그 과정에서 사과 상자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하다니 ) 있었을 것. 물론 당시의 능력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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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포적 공업화】 Q17 왜 우리 힘으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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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의 빚 탕감】 소비가 늘고 공장이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것이다. 하지만 돈 부족.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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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축재처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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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화폐개혁. 집에 돈 쌓아놓는 사람의 돈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끄집어내기 전에 제조업 중소기업들이 버티지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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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은 수출. 달러가 들어옴. 환율은 정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음. 가발부터 가마니 쥐 가죽 장어 가죽 등등 다 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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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한 척 파는 게 더 효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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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수시장에 대한 신경은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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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에 잘된 일은 구조조정. 수출중심 하다 보니까 어느 분야에는 과잉. 돈만 따내려고 만들다 망하고…. 80년대 들어와서 강력하게 강압적인 명령 (현대 너희는 큰 엔진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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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의 일은 단 하나. 국가개입을 줄이며 민간에 경제를 맡기는 것. 현재의 경제민주화 프레임도 이에 포함되므로 아직 진행 중. 아직도 외국의 자본가들이 보면 규제 정부 간섭 많아 투자하기 힘든 나라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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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다른 점. 당시 실무를 담당한 젊은 관료가 60년대에도 여전히 중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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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실행 의지 (페이퍼플랜? 아니면 진짜?) 가 다르다. 당시에도 기획처는 있었지만 그건 처고 재무부와 엄청 싸워야 했다. (지금은 두 부서를 붙여 놓음) 재무부에는 장관이랑 한국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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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총리급의 경제기획원을 만들어서 더 위에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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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을 여러 가지 할 수 있도록 대기업이 미쓰이 물산 등등을 벤치마킹해 상사를 만듦.
- 가) 부작용 : 정경유착. 망하는 기업 생김. 내수 만들러 돈 빌리러 가면 은행장이 안 받아주지.
- 나) 망하는 기업은 박정희 때 8.3 조치로 부채를 중지시킴. 5년 동안 안 갚아도 됨. 8.3 조치는 한마디로 기업에 대한 특혜였다. 이전에는 돈을 빌리고 싶어도 은행권에는 돈이 없어서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 사주들마저도 사채시장의 물주를 직접 찾아다니며 고리사채에 회사 운명을 맡겨야 했으니. 물가상승률 대비 낮아진 금리로 인하여 기업들의 자금사정도 크게 개선되어 이후 기업들은 큰 성장세를 보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계열사를 확대해나가게 되어 지금도 존재하는 굴지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그룹체제로 탄생하는 바탕이 되었다. From <https://namu.wiki/w/8.3%20%EC%82%AC%EC%B1%84%20%EB%8F%99%EA%B2%B0%20%EC%A1%B0%EC%B9%98→ (정설 : 독재자가 필요하다. 중국처럼) 그러다가 IMF 때 된통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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