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Geon (re-st)

단상토론: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므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라면?


1.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김선철: (광복 이후 일본어 몰아내기 운동을 예시로 들며) 전 국민이 호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소수의 전문가나 정부가 주도한다고 해서 (대중의) 동의 없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분명히 사회적 약속이며, ‘쉬운 용어’ 문제 역시 사용자, 수용자, 수혜자가 마음을 합쳐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2. 업계 표준 용어와 학계의 역할

참석자 2: 트위터에서 ‘디펜던시 인덱션’ (Dependency Injection)의 업계 표준 말이 ‘의존성 주입’이라고 봤습니다. (허기홍 교수님이 말씀하신) ‘멍청한 번역 알고리즘’에 따라 단어별로 번역한 말 같았습니다.

이광근: ‘메꿈질’, ‘모양 맞는 부분 주입’은 어떤가요.

참석자 2: ‘메꿈질’이 바이럴이 됐는데, 저는 그 바이럴 자체가 성공이라고 봅니다. 컴퓨터 분야는 산업계가 먼저 (용어를) 만들고, 학계가 나중에 더 나은 개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는 ‘막 고쳐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계가 산업계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의 표준 제시라고 봅니다.

3. 번역은 국제화에 방해가 되는가?

최광훈: “우리가 영어로 학술 활동을 하는데, 또 다른 한국어 용어를 만드는 것은 국제화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석자 2: (독일 사례를 들며) 독일도 번역을 하지만, 선배 세대가 번역한 소프트웨어 공학 용어가 지금의 개념과 안 맞아 안 쓴다고 합니다. 한 번 번역하고 ‘권위’가 되어버리면 안 됩니다. ‘다이나믹스’ 가 있어서 계속 수정하고 공감대를 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국제화는 국제화고, 우리 말로 공부하는 건 공부하는 겁니다. 두 개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이재호: (easyword.kr 플랫폼 제작자로서) 개발자들은 그 용어를 매일 쓰며 제품을 만듭니다. 그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광훈: 산업계는 설득하기 힘듭니다. 그들은 관심이 없어요. 제 전략은 ‘양자 역학 전략’입니다. 아인슈타인 (현재 산업계)은 죽을 때까지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린 겁니다. 산업계를 설득하기보다, 우리가 키운 학생들이 산업계를 (장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참석자 6: 오히려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언어는 사고 체계입니다. 우리는 우리말 사고 체계와 영어 사고 체계, 두 개의 강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광근: 번역은 일방향이 아닙니다. (선진국에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번역을 통해) 우리 식의 체계를 만들면 그걸 거꾸로 (서구에)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참석자 2: 다만 일본 모델처럼, 번역이 너무 활발하면 자국 안에서만 연구가 이루어질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미안한데 영어로 볼 수밖에 없다"고 사과합니다. 좋은 우리말 교재가 없습니다.

4. 전문 용어의 본질 (Syntax와 통사론)

김선철: (본인 전공인 언어학 예를 들며) ‘국어학’계는 미국식 이론을 쓰지만 ‘통사론’ 처럼 우리말 용어를 씁니다. 반면 ‘언어학’계 (미국 유학파 주류)는 같은 국어를 연구하면서도 영어를 엄청나게 씁니다. (조사와 어미 빼고) 그러다 보니 서로 소통을 안 해서 발전이 더딥니다.

이광근: (끼어들며) 김 박사님, 우리는 ‘통사론’ 모릅니다. 그거 일본에서 온 거 아닙니까?

김선철: (설명하며) ‘통사론’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광근: 답답하죠. 영어는 쉬운데 번역된 건 못 알아듣겠습니다. ‘Syntax’를 ‘통사론’이라고 번역한 겁니다.

김선철: ‘Syntax’도 미국 사람들에게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그들도 그 개념을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광근: (컴퓨터 과학에서는 ‘Syntax’와 ‘Grammar’ 차이가 없다고 말하며) 우리 조상들 (이황, 정약용)은 훌륭한 사상을 ‘중국말로 썼’ 습니다. 나는 읽을 수가 없어요. 15세기부터 좋은 알파벳 (한글)이 있었는데도,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디 감히 이런 심오한 얘기를 (저잣거리 말로) 쓸 수 있겠냐"는 자세가 있었던 것 같고, 그게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김선철: 독일 철학은 독일어로 합니다. 독일어 복합 명사 (복합 명사)는 띄어쓰기 없이 50자씩 붙여 씁니다. 우리말이 한자보다 길다고 불만이지만, 독일어에 비하면 나쁜 체계가 아닙니다. 노력하기 나름입니다.

이광근: 강대국이기 때문에 자기 말을 쓴 게 아니고, 자기 말로 (학문을) 해서 강대국이 된 것 같더라고요.

참석자 7: 우리나라 말에 완전히 동화된 쉬운 용어로 학술 용어가 정착되어야 우리나라 전반적인 과학 기술 수준이 올라갈 것입니다.

5. 보급의 필요성과 전략

참석자 7: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영어를 못해서’ 공부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운 우리말로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최광훈: 지금 (한류) 분위기를 이용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욕 (‘씨발’을 ‘SSI bal’로)도 씁니다. (웃음) 외국 유학생들에게 영어로만 하지 말고 한국어 용어를 가르쳐도 됩니다.

참석자 2: 저는 한글 논문 쓸 때, ’easyword.kr’을 풋노트 (Footnote)로 달아서 이 용어에 대한 토론이 있음을 알리고, 포럼으로 유입시키는 작업을 하려 합니다.

참석자 2: 좋은 용어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비기능 요구 사항’ (NFR)을 ‘기능 외 요구 사항’으로 바꿨습니다. 학생들에게 두 용어를 병기해서 줬더니, 학생들 모두 ‘기능 외 요구 사항’이라고 썼습니다. 더 자연스러운 겁니다.

6. ‘북한 말 같다’는 비판과 수용 전략

최광훈: “너무 어색하다”, “북한 말 같다"는 비판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광근: 그건 우리 콤플렉스입니다. 분단 상황 때문에 발목 잡히는 거죠.

이재호: 하지만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본능적입니다. 강요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공동체’ 대신 ‘커뮤니티’라고 하듯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처음부터 쓰나미처럼 100% 우리말로 주기보다, ‘객체’ (Object)처럼 이미 정착된 단어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침투시켜야 어색함을 덜 느낄 겁니다.

이광근: (강조하며) 이건 ‘우리 말 (순화) 운동’이 아닙니다!

최광훈: 뭘 먼저 듣느냐의 문제입니다. 양자 역학의 ‘결맞음’, ‘중첩’도 영어로 먼저 배웠다면 ‘북한 같다’고 했을 겁니다. 지금 중고등학교 ‘정보’ 과목을 공략하면 잘 퍼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석자 6: 전략적으로 ‘디스’ (disagreement)가 적은 용어부터 소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커버리지’를 ‘덮이’로 바꾸는 것보다, ‘비기능적 요구 사항’을 ‘기능 외 요구 사항’으로 바꾸는 게 ‘놀라움의 정도가 덜하고’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참석자 2: 핵심은 ‘주체적으로’ 표현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댓글’은 살아남았지만 ‘누리집’은 안 쓰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7. ‘커버리지’ (Coverage) 논쟁

최광훈: “두 개를 알아야 해서 부담이 2배가 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참석자 2: 그건 영어권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자들은 자기 이론을 위해 새 용어를 만듭니다.

김선철: 의학 용어는 한자어 (골다공증), 우리말 (뼈 엉성증)이 몇 년 주기로 바뀝니다. 학생들 부담이 어마어마하죠. IT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참석자 9 (학생): (질문) ‘커버리지’는 왜 번역해야 합니까? ‘커버’ (cover)는 다 아는 쉬운 단어 같은데요?

참석자 2: ‘커버리지’를 학생들이 논문에 쓸 때 보면 오해가 많습니다. 어떤 학생은 ‘측정값’ (숫자)으로, 어떤 학생은 ‘True/False’로, 어떤 학생은 ‘집합’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척도’ 라는 의미, 즉 ‘값’이라는 걸 표현해 주고 싶어서 (‘덮이’를) 제안했습니다.

참석자 9 (학생): ‘덮이’로 바꾼다고 해결될까요? 단어는 예문으로 배우는데, ‘덮이’는 예문이 없습니다.

참석자 2: 닭과 달걀의 문제입니다. ‘덮이’ 예문이 없죠. 하지만 ‘덮이’라는 말을 썼을 때 뒤에 더 자연스러운 말이 이어질지 실험 하는 과정입니다.

다른 학생 (참석자 9): 그래서 (번역이) 필요합니다. LLM에 한국어로 질문하면서 전문 용어만 영어로 쓰면, 언어가 달라서 검색 효능이 떨어집니다. 우리는 한국어로 된 예문과 ‘담론장’ (discourse field)이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참석자 2: 맞습니다. 이대로 두면 ‘오래된 라이브러리를 업데이트 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커버리지’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도 (Test Coverage -> Coverage-Directed Testing) 변하고 있는데, 번역 (혹은 해석)을 안 하니 한국어의 이해는 낡아버립니다 (outdated).

8. 보급을 위한 제언

이재호: ‘Raw Query’를 ‘생질의’로 번역했는데, (학생이 쉽지 않다고 하자) 저도 ‘쌩쿼리’를 제안했습니다. 문제는 단어 대 단어 (word-for-word) 매핑입니다. 우리는 “쌩 쿼리 보내지마"가 아니라 “쿼리 생으로 보내지마"라고 합니다. 단어가 아니라 ‘사용 예’를 번역해야 합니다.

최광훈: 맞습니다. 영어는 명사 (noun) 중심이고, 우리는 동사 (verb) 중심입니다.

이광근: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가들 (여기 계신 학생분들)이 ‘책을 쓰는 것’ 입니다. “요즘 책을 누가 읽냐"고 하지만, 읽습니다. (본인 책 컴퓨터 과학이 여는 세계를 읽고 KAIST에 왔다는 학생 일화) 유튜브 2시간짜리 내용이 책 한두 페이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쉬운 전문 용어로, 부드럽게, 깊이 있는 내용의 책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쌓이면 우리나라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가 엄청나게 세질 겁니다.

참석자 2: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 (誌) 같은 잡지가 없어졌습니다. 신진 연구자들이 우리말로 글을 쓸 ‘모판’ 역할을 할 미디어가 필요합니다.

김선철: 쉬운 용어화의 이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언어학을 배우며) 저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말 용어 체계와 영어 체계를 복합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인지 능력에 더 낫다는 연구도 많습니다.

최광훈: (CACM, IEEE Spectrum을 보여주며) 외국 학회지는 읽고 싶게 만드는데, 우리 정보과학회지는 PDF에 권위적입니다. 웹 기반의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이광근: (마무리하며) 이 활동은 정보과학회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전 분야 교수님들이 참여하는 첫 ‘공식적인 운행’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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