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사진 속 석상들의 정체
예전에 용산 미군부대와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찍어두었던 석상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얼핏 보면 검게 그을리고 마모된 얼굴이 마치 서양의 ‘그림 리퍼 (Grim Reaper)‘나 무속 신앙의 저승사자처럼 보여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과연 이들은 죽음을 부르는 사신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지키는 수호신일까?
이들의 정체는 망자를 영원히 보필하고 능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워진 문인석(文人石) 과 동자석(童子石) 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정원 장식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조선시대 유교적 세계관이 투영된 ‘효(孝)‘와 ‘충(忠)‘의 결정체이자, 당시의 복식사와 조각 미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다.
이 글에서는 사진 속 석상의 도상학적 특징을 분석하여 그 정의와 기능을 명확히 하고, 이들이 왜 본래의 위치인 무덤을 떠나 용산, 평택, 그리고 도쿄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 기구한 ‘문화재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용산기지 드래곤 힐 랏지 앞]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앞]
[미8군사령부 건물 왼편 (정문 기준) 에도 배치되어 있으나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2. 도상학적 정밀 분석: 문인석과 동자석의 식별
석상들은 조선시대(1392–1910) 능묘 조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인석과 동자석, 그리고 유사한 다른 석물들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2.1 문인석(文人石): 영원한 보좌관
첫 번째 사진에 등장하는 거대한 석상은 문인석이다. 문인석은 왕릉이나 사대부의 무덤 앞에 세워지는 인물상 중 하나로, 무덤의 주인공을 보좌하고 능역(陵域)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1.
2.1.1 복식과 형태
문인석은 당대 관료들이 입던 예복인 조복(朝服)이나 공복(公服)을 착용하고 있다.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金冠)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신분이 문관(文官)임을 나타낸다. 사진 속 석상의 경우, 머리에 쓴 관모의 형태와 몸을 감싸는 관복의 주름 표현이 매우 도식화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양식이다 2.
조선 전기 문인석은 전체적으로 강건하고 위엄 있는 기풍을 보이며, 옷주름이 깊고 굵게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기 이후로 갈수록 얼굴 묘사가 부드러워지거나 해학적으로 변모하며, 후기에는 전체적인 조형미가 단순화되거나 장식성이 강조되는 등 시대별 양식 변천이 뚜렷하다.
2.1.2 홀(笏)의 의미
문인석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직사각형의 긴 판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홀(笏) 이라고 불리는 의례용구이다. 살아생전 관료들이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쥐던 것으로, 임금의 교명(敎命)을 적거나 임금에게 올릴 말씀을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무덤 앞의 문인석이 홀을 쥐고 있다는 것은, 죽은 자(피장자)를 생전의 임금처럼 여전히 섬기고 있으며, 언제든지 그의 명령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영원한 충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내가 처음에 느꼈던 ‘메신저’로서의 성격보다는 ‘보좌관’이나 ‘참모’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2.2 동자석(童子石): 망자를 위한 시동
두 번째 사진이나 박물관 등에서 보이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앳된 얼굴을 한 석상은 동자석이다. 동자석은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쌍계(雙髻)를 하거나 민머리 형태를 하고 있으며, 문인석보다는 덜 권위적이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3.
2.2.1 지물(持物)의 상징성
문인석이 오직 ‘홀’이라는 관료적 상징물만을 드는 것과 달리, 동자석은 망자의 사후 생활을 돕기 위한 다양한 물건을 들고 있다. 이를 지물(持物)이라 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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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과 술잔: 망자에게 술을 올리는 시중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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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더위를 식혀주고 편안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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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무덤의 환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망자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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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나 붓: 생전의 생활 습관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지물들은 동자석의 기능이 권위적인 수호보다는 실질적인 ‘시중’과 ‘위로’에 있음을 보여준다. 제주도 지역의 무덤에서는 동자석이 특히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현세의 삶이 내세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민중의 소박한 염원이 투영된 것이다.
2.3 장군석(武人石)과의 구별
참고로, 문인석과 짝을 이루어 왕릉에 배치되는 무인석(武人石, 혹은 장군석)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며, 손에는 긴 칼 (검)을 짚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인석은 악귀를 물리치는 물리적인 ‘경호원’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사대부 묘역에는 원칙적으로 무인석을 세울 수 없었으므로, 민간 묘역에서 발견되는 석상은 대부분 문인석이다. 따라서 사진 속 석상들이 칼을 들고 있지 않고 관복을 입고 있다면, 이는 확실히 문인석이다.
3. 오해의 불식: 왜 ‘사신(Messenger)‘으로 보였을까?
3.1 저승사자와의 차이점
한국 전승 설화에 등장하는 저승사자 (차사)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수명이 다한 영혼을 강제로 데려가는 존재다. 그들은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것으로 묘사되지만, 결코 무덤 앞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이동하는 존재’이며 ‘외부의 존재’다.
반면, 문인석은 ‘고정된 존재’ 이자 ‘내부의 존재’ 다. 그들은 무덤이라는 특정 공간에 영구히 귀속된다. 그들의 임무는 망자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망자가 머무는 그 자리를 지키며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다. 즉, 사신이 ‘이별의 집행자’라면 문인석은 ‘영원한 동반자’다.
3.2 수호신으로서의 의미: 벽사(辟邪)와 예(禮)
그렇다면 어떤 의미를 가진 수호신일까? 답은 ‘유교적 예법의 수호자’ 로 정의할 수 있다. 문인석은 초자연적인 마법을 부리는 신이라기보다, 무덤 주인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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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과시: 문인석을 세울 수 있는 자격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왕족이나 일정 품계 이상의 관료만이 묘역에 석물을 치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문인석의 존재 자체가 피장자가 생전에 고위 관료였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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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辟邪) 기능: 문인석은 직접적인 무기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 엄숙한 표정과 부동의 자세로 잡귀의 접근을 막는 주술적 기능을 수행한다. 무덤 영역을 신성한 공간으로 구획 짓는 경계석(Boudary Marker)의 역할도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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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의 관료제: 조선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도 현세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문인석은 저승에서도 피장자가 관료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보좌함으로써, 죽음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4. 용산 미군기지와 평택 캠프 험프리스: 디아스포라의 역사
“미군부대 (용산, 평택)에서 본 석상"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들이다.
4.1 용산 기지의 역사적 층위와 문화재 유입
용산은 20세기 초부터 외국 군대의 주둔지였다.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고, 이후 조선주차군사령부와 총독 관저 등이 들어서면서 용산은 일본 식민 통치의 군사적 심장부가 되었다.
4.1.1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약탈과 정원 장식화
일제강점기 동안 수많은 일본인 관료와 자산가들은 조선의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다. 특히 그들은 문인석, 동자석, 석탑과 같은 석조물을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 장식품으로 선호했다. 본래 무덤 앞을 지키던 신성한 석물들이 뿌리 뽑혀 일본군 장교의 관사나 총독부 정원으로 옮겨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용산 기지 내에 존재하는 석상들 역시 이 시기에 서울 인근이나 지방의 사대부 묘역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되어 이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4.1.2 미군의 인수와 ‘드래곤 힐 로지(DHL)’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용산 기지를 접수했다. 이때 기지 내에 남겨진 석상들도 그대로 미군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미군 장병들에게 이 석상들은 동양적인 신비감을 주는 독특한 예술품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용산 총독관저를 장식하던 석상은 건물이 해체되고 브라이언 올굿 병원 (구 121병원)이 들어서며 병원 앞을 지키게 되었다. 브라이언 올굿 병원이 평택으로 옮겨지면서, 석물들은 용산 기지 내 미군 전용 호텔인 ‘드래곤 힐 로지 (Dragon Hill Lodge)‘의 입구로 옮겨져, 한국적인 정취를 풍기도록 조성되었다 6. 미군 측은 이를 지역 문화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보존하고 전시해왔으나, 그 기원이 도굴과 약탈에 닿아 있다는 점은 씁쓸한 점이다.
4.2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의 이전
2000년대 들어 추진된 ‘용산기지 이전 계획(YRP: Yongsan Relocation Plan)‘에 따라 주한미군 사령부와 제8군 사령부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로 이전하였다 7.
4.2.1 석상의 동반 이전
이 과정에서 용산 기지를 장식하던 주요 기념물들도 함께 평택으로 옮겨졌다. 제8군 사령부 건물 앞에 있던 월튼 워커 (Walton Walker) 장군 동상뿐만 아니라, 기지 내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문인석과 동자석들 역시 부대의 자산 혹은 역사적 기념물로 간주되어 평택으로 이송되었다 8.
4.2.2 현재의 위상
현재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목격되는 석상들은 과거 용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 모를 조선 사대부의 무덤에서 온 것들이다. 주한미군은 부대 내의 한국 문화재를 ‘한미 동맹의 상징’이나 부대 역사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지만, 문화재청이나 관련 학계에서는 이들의 정확한 원소유처를 파악하고 반환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11 석상들은 본래 있어야 할 자리(무덤)를 잃고 군사 기지라는 낯선 땅에서 ‘이방의 수호신’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5. 도쿄 국립박물관과 오구라 컬렉션: 약탈된 유산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 석상은 한국 문화재 반출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오구라 컬렉션(Ogura Collection)’ 과 깊은 관련이 있다.
5.1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와 수집 광풍
오구라 다케노스케 (1896–1964)는 일제강점기에 ‘남선합동전기회사’ 사장을 역임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재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1921년부터 1952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그 수량은 1,100여 점에 달하며, 여기에는 금관총 출토 유물과 같은 고고학적 발굴품뿐만 아니라, 각지의 폐사지나 고분에서 불법적으로 채취한 석탑, 불상, 문인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9.
5.2 문인석의 일본 반출 경로
무덤을 지키던 문인석은 무게가 수 톤에 달해 몰래 훔치기 어려운 물건이다. 그러나 당시의 무법적인 상황과 오구라의 권력은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수집한 유물들을 대구에 보관하다가 패망 직후 일본으로 밀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문인석들이 대한해협을 건넜다.
5.3 도쿄 국립박물관 동양관(Toyokan)의 전시
오구라 사후, 그의 아들은 1981년 이 컬렉션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 동양관(Asian Gallery)의 ‘조선 반도의 미술’ 코너에 전시된 문인석과 동자석들은 바로 이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이다 10. 박물관 측은 이를 ‘아시아의 예술품’으로 소개하며 미학적 가치를 강조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불법 부당하게 약탈된 문화재의 증거다. 특히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오구라 컬렉션은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반환 문제는 양국 간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6. 결론: 석상에 담긴 진정한 의미
내가 사진으로 남긴 석상들은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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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Identity): 그들은 조선시대의 문인석(Civil Official Statue) 과 동자석(Child Attendant Statu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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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Function): 그들은 무덤 주인을 영원히 모시고자 했던 충심과 효심의 발로이다. 무덤이라는 성역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망자의 시중을 드는 영원한 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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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 미군부대 (용산, 평택)와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 석상들은 20세기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증언한다. 일제강점기의 약탈로 인해 본래의 자리를 잃고, 장식품으로 전락하여 타향 (미군기지, 일본 박물관)을 떠돌게 된 ‘디아스포라 문화재’ 이다.
따라서 이 석상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이 가진 ‘수호신’으로서의 위엄뿐만 아니라,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서 있어야만 하는 그들의 ‘침묵의 역사’ 또한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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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uninseok (Civil Official Statue)” - DigitalCommons@UMain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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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uninseok (stone statue of civil officials) - unknown - Google Arts & Cultur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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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ongjaseok (Child Statue) Definition and Function - Jeju National Museum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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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Odujej Dongjaseok Stone Incense Holder - The Good Liver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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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용산미군기지 속 문화유산 111년만에 본다” - 한겨레 (2016)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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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ragon Hill Lodge History - Dragon Hill Lodge Official Sit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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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주한미군사령부 평택 캠프 험프리스 기지로 이전” - MBC 뉴스 (2018)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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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hanging of the guard: The future of Yongsan” - Korea JoongAng Daily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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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컬렉션 한국문화재] 도록 발간 - 국가유산청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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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Asian Gallery (Toyokan) Exhibitions - Tokyo National Museum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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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획보도2] 용산 미군기지 백년사…잠든 역사 유물들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