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Geon (re-st)

한국의 능묘 조각 (문인석 및 동자석) 심층 분석: 도상학적 기원과 디아스포라의 역사

[essay] 5 min read

예전에 용산 미군부대와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찍어두었던 석상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검게 그을리고 마모된 얼굴이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용산기지 드래곤 힐 랏지 앞]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앞] 이들은 망자를 영원히 보필하고 능묘를 수호하기 위해 세워진 문인석 (文人石)동자석 (童子石) 이다. 동자석은 현재 용산 미군부대, 도쿄 국립박물관, 도쿄 네즈미술관 등 외국의 영토에 반출되거나, 한국 고려대 이화여대 등 수많은 대학의 박물관, 그리고 수많은 수집가들의 석물정원으로 자리를 옮겨 존재하고 있다. 평택 미군부대에는 1960년에 만들어진 복제품이 있기도 하다. (위치는 미8군사령부 건물의 정문 기준 왼편에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진을 찍어보려 한다)

이들이 왜 본래의 위치인 무덤을 떠나 용산, 평택, 그리고 도쿄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 기구한 ‘문화재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추적해보자.

[고려대 문과캠퍼스] [이화여대 캠퍼스]

석상들은 조선시대 (1392–1910) 능묘 조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인석과 동자석, 그리고 유사한 다른 석물들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문인석은 당대 관료들이 입던 예복인 조복 (朝服)이나 공복 (公服)을 착용하고 있다. 머리에는 복두 (幞頭)나 금량관 (金梁冠)을 쓰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신분이 문관 (文官)임을 나타낸다. [1]

문인석은 당시의 조각양식을 보여주고 우리나라 능묘제도의 변천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전기 문인석은 전체적으로 강건하고 위엄 있는 기풍을 보이며, 옷주름이 깊고 굵게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기 이후로 갈수록 얼굴 묘사가 부드러워지거나 해학적으로 변모하며, 후기에는 전체적인 조형미가 단순화되거나 장식성이 강조되는 등 시대별 양식 변천이 뚜렷하다. [2]

문인석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직사각형의 긴 판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홀 (笏) 이라고 불리는 의례용구이다. 살아생전 관료들이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쥐던 것으로, 임금의 교명 (敎命)을 적거나 임금에게 올릴 말씀을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무덤 앞의 문인석이 홀을 쥐고 있다는 것은, 죽은 자 (피장자)를 생전의 임금처럼 여전히 섬기고 있으며, 언제든지 그의 명령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영원한 충성’을 상징한다.

능묘 주위에 석조물을 배치하는 풍습은 중국 전한시대 (前漢時代)에 시작된 것이다. 현존하는 최고 (最古)의 작품은 전한 무제 때의 명장이었던 곽거병 (霍去病)의 묘 앞 조각들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능묘조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기 시작하여 신분에 따른 능침제도 (陵寢制度)가 확립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능묘조각」 [2]

동자석은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쌍계 (雙髻)를 하거나 민머리 형태를 하고 있으며, 문인석보다는 덜 권위적이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3]

문인석이 오직 ‘홀’이라는 관료적 상징물만을 드는 것과 달리, 동자석은 망자의 사후 생활을 돕기 위한 다양한 물건을 들고 있다. 이를 지물 (持物)이라 한다. [4]

  • 술병과 술잔: 망자에게 술을 올리는 시중을 든다.
  • 부채: 더위를 식혀주고 편안함을 제공한다.
  • 꽃: 무덤의 환경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망자를 위로한다.
  • 거울이나 붓: 생전의 생활 습관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제주 동자석은 무덤 앞에 세워진 1m 이하의 작은 석물을 말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이 제주도에도 들어오면서 동자석이 세워졌다. 자유롭고 단순하게 표현된 제주의 동자석은 제주 특유의 토속적 미감을 보여 준다.

— 지역N문화 (한국문화원연합회), 「제주인의 심성이 반영된 제주 동자석」 [4]

무인석 (혹은 장군석)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며, 손에는 긴 칼 (검)을 짚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인석은 악귀를 물리치는 물리적인 ‘경호원’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사대부 묘역에는 원칙적으로 무인석을 세울 수 없었으므로, 민간 묘역에서 발견되는 석상은 대부분 문인석이다. [2]

미군부대 (용산, 평택)에서 본 석상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들이다.

일제시대 용산은 식민 통치의 군사적 심장부였다. 일본인들은 석조물을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 장식품으로 선호했기에, 본래 무덤 앞을 지키던 신성한 석물들이 뿌리 뽑혀 일본군 장교의 관사나 총독부 정원으로 옮겨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용산 기지 내에 존재하는 석상들 역시 이 시기에 서울 인근이나 지방의 사대부 묘역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되어 이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용산구 역사탐방 안내를 맡았던 김천수 향토사학자는 “서울에서 이 정도로 문화재들이 잘 간직된 곳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가치 있는 문화재로 여기저기 흩어져 서 있는 문인석 (분묘 앞에 세우는 문관 형상의 돌)을 꼽았다. 터 잡고 살다 무덤마저 잃고 쫓겨난 조선 백성들의 자취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 인터뷰 [5]

출처의 사진을 보면, 무덤 앞이 아니라 마당에 아무렇게 놓여 있다. 반출되었음을 시사한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용산 기지를 접수했다. 이때 기지 내에 남겨진 석상들도 그대로 미군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미군 장병들에게 이 석상들은 동양적인 신비감을 주는 독특한 예술품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추진된 ‘용산기지 이전 계획 (YRP: Yongsan Relocation Plan)‘에 따라 주한미군 사령부와 제8군 사령부는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Camp Humphreys)로 이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용산 기지를 장식하던 주요 기념물들도 함께 평택으로 옮겨졌다.

실제로 용산기지의 90% 이상이 평택으로 이전되었으며 [6], 기지를 상징하던 월튼 워커 (Walton Walker) 장군 동상도 2017년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옮겨졌다 [7]. 드래곤힐 랏지 (Dragon Hill Lodge) 일대에 흩어져 있던 문인석·동자석 역시 부대 이전과 함께 평택으로 이송된 것으로 전한다 [8].

한편 도쿄 국립박물관에 있는 석상은 한국 문화재 반출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오구라 컬렉션 (Ogura Collection)’ 에 포함되어 있다.

오구라 사후, 그의 아들은 1981년 이 컬렉션 (한국 문화재 약 1,030건)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9]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 동양관 (Asian Gallery)의 ‘조선 반도의 미술’ 코너에 전시된 문인석과 동자석들은 바로 이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이다.

결국 이 석상들은 천 년이 넘도록 죽은 이를 섬기고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자신이 지켜야 할 무덤을 잃고 낯선 땅을 떠도는 처지가 되었다.

언젠가 이들이 제자리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디서 왜 떠나왔는지만은 기억되기를 바란다.

출처

[1]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문석인 (文石人)」.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문석인 (文石人)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능묘조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337 [3] 국립제주박물관 소장품, 「동자석·문인석」. https://jeju.museum.go.kr [4] 지역N문화 (한국문화원연합회), 「제주인의 심성이 반영된 제주 동자석」. https://ncms.nculture.org/stonecraft/story/7044 [5] 한겨레, 「용산기지 안 문화재…터 잃고 쫓겨난 조선 백성들의 자취」 (김천수 인터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38629.html [6] 녹색연합, 「[기고] 공원으로 바뀌는 용산기지, 사라진 마을 이야기」. https://www.greenkorea.org/activity/peace-and-ecology/army/84136/ [7] VOA 코리아, 「주한미8군사령부 평택 이전 시작…‘워커 장군 동상’ 이전 행사」. https://www.voakorea.com/a/3824552.html [8] Korea JoongAng Daily (영문), “Changing of the guard: the future of Yongsan”. https://www.koreajoongangdaily.com/lifestyle/changing-of-the-guard-the-future-of-yongsan-next-steps-for-what-has-been-a-military-base-for-over-100-years/10274011 [9] 경향신문, 「‘오구라 컬렉션’은 되찾을 수 있을까」. https://www.khan.co.kr/article/20150729113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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